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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뉴스일반

이순신 장군에 대한 국내외의 평가 모음

내가 아는 카페, http://cafe.daum.net/cs11sz ⓒ 도시가 눈을 감지 않는 이유







요즘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영화화한 영화 '명량'이 흥행 중이잖아.

그걸 보니 갑자기 이순신 장군에 대한 평가가 어떨지 궁금해져서 찾아봤거든.

우리나라에선 이순신 장군은 이미 영웅이나 다를 바 없는 분이신데,

세계에선 과연 이순신 장군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정리해봤어요!


혹시 문제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1. 어떤 인물인가

(간략 소개)




이순신 장군





1545년 (인종 원년) 4월 28일 ~ 1598년 (선조 31년) 12월 16일


조선 중기의 무관


임진왜란 당시,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한산대첩 등

수많은 해전에서 공을 세웠지만

원균의 모함(+선조의 불신 : 할 말은 많지만..부들부들)으로

3번 파직 + 옥중 생활 + 2번 백의종군

칠천량 해전의 패배로 다시 복귀하여 명량에서 승리,

노량해전에서 전사





2. 국내에서의 평가




한산도에 진을 치매 적이 감히 엿보지 못하고 한 바다를 가로막으매 그대 힘만 믿었더니 지난해에 패전한 것 원통한 말 어이할꼬. 그대 그냥 두었던들 그럴 리가 있었으랴. 대장을 잘못 바꿈, 이 나의 허물이라 누구더러 도와 달란 들 기운 짐 어이하리. 두 번 다시 부임하여 무너진 뒤를 이어 혼란을 수습하고 군졸을 불러 모았도다 … 사랑홉다 그대여, 공로는 사직에 있고 빛나는 충성 절개 죽어도 영화롭다. 인생 한 세상에 한번 죽음 못 면하네. 죽을 데서 죽은 이로 그대 같은 이 드물도다.



 

<선조,《卒逝後賜祭文》>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죽은 순신이 산 왜놈들을 격파하였다.



 

<《人皆謂死舜臣破生倭 선조실록 사관(史官)》>





“이순신은 백 번 싸운 장군으로서 한 손으로 친히 무너지는 하늘을 붙든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순신은 재질을 가지고도 운수가 없어 백 가지 재능을 한 가지도 풀어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서애 유성룡》>





무후(제갈량)가 죽은 것은 병 때문이었는데, 공(이순신)이 죽은 것은 전사였다. 그러나 무후(제갈량)가 죽은 뒤엔 한(漢) 나라(촉한)의 종실(宗室)이 위태롭게 되었지만, 공의 경우엔 비록 죽었지만 남은 공렬(功烈)의 은덕을 입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직(社稷)이 거기에 힘입고 있으니, 공은 여한(餘恨)이 없을 것이다.



 

<관음포이충무공전몰유허(李忠武公戰歿遺墟) 《연천 홍석주》>






3. 세계에서의 평가





"천지를 주무르는 재주와 해를 다시 손 본 공로다"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모하고 숭상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임진왜란 참전 왜군 장수,와키사카 야스하루>







옛부터 장군으로서 묘법을 다한 자는 한둘에 그치지 않는다. 해군 장군으로서 이를 살펴보면 동양에서는 한국의 이순신, 서양에서는 영국의 NELSON(1758-1805)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불행히도 이순신은 조선에 태어났기 때문에 서양에 전하지 못하고 있지만 임진왜란의 문헌을 보면 실로 훌륭한 해군장군이다. 서양에서 이에 필적할 자를 찾는 다면 네덜란드의 Ruyter Michiel(1607-1678) 이상이 되어야 한다. 넬슨과 같은 사람은 그 인격에 있어서도 도저히 어깨를 견줄 수가 없다. 장군(이순신)의 위대한 인격, 뛰어난 전략, 천재적 창의력, 외교적인 수완 등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그 짝을 찾을 수 없는 절세의 명장으로, 자랑으로 삼는 바이다.




<일본 해군준장, 사토 데쯔라로>






"나를 넬슨에 비하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하는 것은 감당 할 수 없는 일이다.



<승전 축하연 답사에서-일본 해군제독, 토고 헤이하찌로>






"이순신의 죽음은 마치 넬슨의 죽음과 같다. 그는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이기었다" 



<출처: "朝鮮役(조선역)- 일본 석학, 토쿠토미 테이이찌로>






이순신은 청렴한 인물로, 그 통솔력과 전술능력으로 보나 충성심과 용기로 보나이러한 인물이 실재(實在)했다는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상적 군인이었다.영국의 넬슨 이전에 있어서의 이름난 장수이기도 하거니와 세계 역사상 이순신만한 사람이 없으며, 이 인물의 존재는 조선에 있어서까지도 잊혀지지 않겠지만, 도리어 일본 사람의 편에서 그에게 존경심이 계승되어, 명치유신 기간에 해군이 창설되기까지 하였으니, 그업적과 전술이 연구되어져야 한다. 




<역사 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






고니시, 시마즈 등은 이순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싸우다가 또 패주했다. 이야말로 죽은 제갈(諸葛孔明)이 살아 있는 중달(仲達)을 쫓은 것이나 다름없다. 싸움이 그치자 그제서야 비로소 이순신의 죽음을 안 진린은 놀라고 배에 엎어지기 세 번이더니 탄식하기를 “실로 그만한 자 고금에 다시없다!”고 하였다.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킨 그 충렬(忠烈). 조선왕조는 쇠망하기 시작하여 3 백년 뒤 일본에 합병 되었다. 하나, 호걸 이순신의 영명(英名)은 천추에 길이 빛날 것이다.



<(이조사 대전)저자, 아오야 나기(靑柳南冥)>






도고가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면 그 발가락 한 개에도 못 따라간다. 이순신에게 넬슨과 같은 거국적인 지원과 그 만큼의 풍부한 무기와 함선을 주었다면, 우리 일본은 하루 아침에 점령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대단히 실례인 줄알지만, 한국인들은 이순신 장군을 성웅이라고 떠받들기만 할 뿐 그 분이 진정으로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하는 것은 우리 일본인보다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일본 해군 전략 연구가, 가와다 고오( 川田功 )>




+




세계 각국의 해군 사관 학교에서는 생도들에게 세계 4대 해전을 가르치는데



1) B.C. 480년 그리스의 데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제독의 살라미스(Salamis)해전

2) 1588년 영국 하워드(Howard) 제독의 칼레(Calais) 해전

3) 1592년 거북선을 앞세워 승리를 거둔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한산대첩(閑山大捷)

4) 1805년 영국 넬슨(Nelson) 제독의 트라팔가(Trapalgar) 해전



그 중,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이 가장 최고인 것으로 평가.





출처 : 가생이닷컴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humor02&wr_id=1041473